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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인이 살아 움직인다

1004 대본 2025. 8. 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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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인이 살아 움직인다 - 조선 화가의 기묘한 사랑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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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붓 끝에서 태어난 여인, 화폭을 찢고 걸어 나오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미인을 그린 외로운 화가. 그의 피와 눈물이 닿는 순간, 그림은 생명을 얻었다. 하얀 저고리 아래 감춰진 그녀의 온기. 꿈인가, 현실인가. 한 폭의 그림을 둘러싼 기묘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디스크립션 (300자)

사람을 멀리하고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던 천재 화가 '설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세상에 없는 절세미인을 화폭에 담아낸다. 그림 속 여인 '소월'을 향한 그의 그리움이 극에 달하던 밤, 기적이 일어난다. 그림이 생명을 얻어 그의 연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비밀스러운 행복은 그림을 탐하는 탐욕스러운 세도가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하는데...

※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그림에만 몰두하는 천재 화가 설촌.

조선 한양의 한적한 골목,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낡은 기와집이 있었다. 그곳은 속세를 등진 천재 화가, 설촌의 작업실이었다. 방 안은 잘 마른 먹의 냄새와 아교 냄새, 그리고 화가의 고독한 열기가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설촌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오직 붓과 화폭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사내였다. 그의 그림 실력은 신기에 가까워, 살아있는 듯한 그의 그림을 한번 본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그리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의 재능을 시기한 다른 화원들의 모함과,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세도가들의 천박함에 크게 상처받은 뒤로 그는 인간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를 유폐했다. 속세의 인간들은 그의 눈에 너무나 비루하고, 탐욕스러우며, 추하게 보였다. 대신 그는 변치 않는 자연, 산수와 화조에만 몰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붓을 들어 거대한 화폭을 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을, 여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정 모델이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 그의 영혼 깊은 곳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상적인 여인이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순수함과 고귀함, 그리고 깊은 슬픔을 간직한 존재. 그는 그림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며칠 밤낮으로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의 붓 끝이 지나갈 때마다, 화폭 위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한데 모은 듯한 여인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칠흑같이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 그 아래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무한한 연민을 담고 있는 듯한 검은 눈동자. 그는 눈동자 하나를 그리기 위해 수백 번의 붓질을 했다. 앵두처럼 붉고 도톰한 입술은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듯 생기가 넘쳤다. 그는 그녀의 살결을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을 고치고 또 고쳤다. 하얀 분을 바른 듯 창백하면서도, 그 아래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듯한 복숭앗빛 혈색이 은은하게 비치도록. 그녀의 가녀린 목선과 부드러운 어깨, 섬섬옥수 고운 손가락 하나하나에 그의 염원과 혼이 담겼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그림 속 여인을 향해 말을 걸고, 자신의 고독한 신세를 한탄했다. “낭자, 이 속세는 너무나 차갑고 더러운 곳이오. 오직 낭자만이 나의 유일한 벗이자 위안이오. 당신의 눈을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추함이 씻겨나가는 듯하오.” 그림은 말이 없었지만, 설촌은 그녀의 눈빛 속에서 대답을 듣는 듯했다. ‘제가 선비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광적인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이제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혹은 자신의 영혼을 깎아 그녀에게 불어넣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림 속 여인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그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림의 윤곽이 거의 다 드러났을 때, 설촌은 붓을 놓고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폭 속 그녀는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운 그림일 뿐이었다. 만질 수도, 그 온기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림과 자신 사이에 놓인 그 압도적인 거리감에,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화폭을 부둥켜안고 어린아이처럼 오열했다.

※ 설촌은 그림 속 여인에게 '소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실제 사람처럼 대한다.

장마가 시작된 어느 여름밤, 창밖에서는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번개가 칠 때마다 창호지가 하얗게 번뜩였고, 천둥소리는 낡은 기와집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했다. 설촌은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며칠째 완성된 그림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는 그림 속 여인에게 '소월(素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달처럼 희고 고고한 여인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소월에게 말을 걸고, 술을 따라주며 함께 마셨다. 마치 그녀가 진짜 살아있는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술이 몇 순배 돌자, 그의 광기는 극에 달했다. “소월… 나의 소월…. 어찌하여 당신은 그림 속에만 있는 것이오. 이리도 내 마음이 타들어 가는데, 어찌하여 대답이 없는 것이오.” 그의 애원은 빗소리에 묻혀 공허하게 흩어졌다.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과, 그녀를 만지고 싶은 갈망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림을 향해 다가갔다. 비에 젖은 흙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이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유일한 향기였다. 그는 결심했다. 이대로 그녀를 그림 속에 가둬둘 수는 없었다. 그는 서랍을 뒤져, 어머니의 유품인 날카로운 은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왼손 약지를 은침으로 깊게 찔렀다. 선홍빛 피가 방울져 맺혔다.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바로 그 손가락의 피였다. 그는 피 맺힌 손가락을 들어, 소월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그림의 모든 것을 완성했지만, 단 하나, 눈동자에는 아직 생기를 불어넣지 않은 상태였다. 용의 그림에 마지막 눈동자를 찍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는 '화룡점정'의 고사처럼, 그는 자신의 생명의 정수인 피로 그녀에게 영혼을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저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지 마시옵소서. 나의 피와 살을 그대에게 주겠소. 나의 영혼을 그대에게 바치겠소. 그러니… 제발… 내게로 와주시오, 소월….”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마침내 소월의 눈동자에 닿았다. 붉은 핏방울이 검은 눈동자 위로 번지는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방 안의 촛불이 푸른빛을 내며 거세게 타오르더니 이내 꺼져버렸고, 사방은 암흑에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던 거센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화폭이 스스로 울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종이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 마른 비단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설촌은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작업실을 가득 채우던 먹 냄새와는 다른,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은은하고 달콤한 여인의 향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어둠 속에서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비님.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그 목소리는 분명, 그림 속 여인, 소월의 것이었다.

※ 설촌의 피가 닿은 그림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설촌은 떨리는 손으로 등잔에 다시 불을 붙였다. 희미한 불빛이 방 안을 비추자,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림이 걸려 있던 자리에는 찢어진 화폭만이 너덜거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그림 속 여인, 소월이 서 있었다. 비단 치마를 입고 하얀 저고리를 걸친, 그림과 똑같은 모습의 여인이. 그녀는 진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되어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림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꿈… 꿈인가… 아니면 내가 미친 것인가….” 설촌은 넋을 잃고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소월은 그런 그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그림 속의 그것과 같았지만, 생기가 더해져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꿈이 아닙니다, 선비님. 또한 선비님께서 미친 것도 아닙니다. 선비님의 간절한 염원과… 그 뜨거운 피가 저를 이곳으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오자, 은은한 난초 향기가 설촌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림의 차가운 감촉이 아니라, 분명한 온기를 가진 사람의 손이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쓸어보았다. 보드랍고 매끄러운 감촉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소월… 나의 소월… 정말로 그대가 맞소….”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대로 품에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가냘팠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여인의 부드러움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부부가 되었다. 설촌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하얀 저고리 아래 드러난 그녀의 속살은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림으로만 그려왔던 완벽한 육체가, 이제 그의 눈앞에 현실로 존재했다. 그는 경외감에 휩싸여, 그녀의 어깨와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피부에서는 그림의 재료였던 종이와 먹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지만, 그 아래에는 분명 관능적인 여인의 체취가 숨 쉬고 있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아….” 소월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은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 몽환적이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설촌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더욱 애가 닳아, 거칠게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쏟아부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예술과 생명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의 염원이자 예술의 결정체인 여인의 몸 안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경을 맛보았다. 땀으로 젖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누워있을 때, 설촌은 그녀에게 물었다. “후회하지 않으시오? 이 비루한 사내를 위해, 평면의 세상에서 나와 이 험한 속세로 온 것을.” 소월은 그의 땀 맺힌 뺨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선비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오직 선비님을 위해 태어난 몸이니까요. 선비님의 붓 끝에서 시작되었으니, 선비님의 품에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이 기적 같은 하룻밤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며.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들의 기묘하고 비밀스러운 사랑이, 곧 세상의 탐욕스러운 시선에 의해 위협받게 되리라는 것을.

※ 살아난 소월과 비밀스러운 행복을 누리는 설촌.

기적이 일어난 후, 설촌의 잿빛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물들었다. 그의 낡은 작업실은 더 이상 고독한 유배지가 아니었다. 소월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웠고, 그녀가 정성껏 끓여주는 차에서는 향긋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 소박하지만 충만한 행복을 누렸다. 설촌은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글을 가르치고, 시를 읽어주었으며, 자신이 그렸던 산수화 속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소월은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태어났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특히 그녀는 설촌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먹을 갈면, 그녀는 옆에서 조용히 벼루를 잡아주었다. 그녀의 섬섬옥수 고운 손이 벼루를 잡고 있을 때면, 설촌은 그림에 집중할 수 없어 붓을 놓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곤 했다. 밤이 되면,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탐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설촌은 이제껏 그림으로만 표현해왔던 미에 대한 갈망을, 살아있는 그녀의 육체를 통해 남김없이 해소했다. 그는 그녀 몸의 모든 곡선을 숭배하듯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었다. 달빛 아래 빛나는 그녀의 쇄골, 부드럽게 솟아오른 젖가슴, 잘록한 허리를 지나 풍만하게 이어지는 엉덩이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예술이자, 그의 세상이었다. 소월 역시 그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맡겼다. 그녀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그림이 아닌 살아있는 여자임을, 그리고 오직 이 사내만을 위한 존재임을 확인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스칠 때, 그의 단단한 몸이 자신을 짓누를 때, 그녀는 살아있다는 황홀한 희열에 몸을 떨었다. 두 사람의 정사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누는 가장 신성하고도 원초적인 교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비밀스러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설촌이 그린 절세미인도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문은 부풀려져 ‘나라 안 최고의 화가가 자신의 혼을 갈아 넣어 그린, 살아있는 듯한 미인도’가 있다는 이야기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이자 탐욕스러운 수집가인 민치혁 대감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민치혁은 이름난 미희나 희귀한 서화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권력과 재물을 이용해 어떻게든 손에 넣고야 마는 인물이었다. 그는 소문을 듣자마자, 설촌의 집으로 행차했다. “네놈이 설촌이더냐. 네가 그렸다는 미인도를 내게 내어놓거라. 값은 원하는 대로 쳐주겠다.” 민치혁은 다짜고짜 반말로 그림을 요구했다. 설촌은 소월을 방 안 깊숙이 숨긴 채, 마당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렸다. “대감, 송구하오나 그런 그림은 존재하지 않사옵니다. 소인이 실력이 미천하여 아직 인물화는 그리지 못합니다.” “네 이놈!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느냐! 네놈의 집에서 계집의 분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시치미를 뗄 셈이냐!” 민치혁의 눈이 매처럼 번뜩였다. 그는 설촌의 집 안을 훑어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설촌이 소문난 미인을 집에 숨겨두고, 그림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주마. 허나 내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림이든, 그림의 주인인 계집이든, 조만간 내 반드시 내 손에 넣고야 말 것이니.” 민치혁은 섬뜩한 경고를 남기고 떠났다. 설촌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맹수의 아가리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은 기분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소월과의 행복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살얼음판 위의 꿈이라는 것을. 그날 밤, 설촌은 소월을 품에 안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더욱 필사적으로 그녀의 몸을 갈구했다. 마치 그녀의 몸 안에 자신을 숨기려는 듯, 그는 어느 때보다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소월은 그의 불안을 느끼며, 아픔을 참아내고 그의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이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불안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낙원 위로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민치혁은 설촌이 집을 비운 틈을 타 다시 찾아오고,

며칠 후, 설촌은 그림에 쓸 귀한 안료가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장에 나가야만 했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소월의 잠든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민치혁이 다녀간 이후, 그는 단 한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생계를 이을 수 없었고, 생계가 없으면 소월을 지킬 수도 없었다. 그는 소월의 손을 잡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밖으로 나와서는 아니 되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어서는 안 되오. 알겠소?” 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심시켰지만, 설촌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설촌이 집을 떠나고 한 시진쯤 지났을까.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나갔다. 민치혁과 그의 가솔들이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이닥쳐, 이 잡듯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샅샅이 뒤져라! 그림이든, 계집이든, 뭐든 값나가는 것은 모조리 찾아내어라!” 민치혁의 고함 소리에 놀란 소월은 방 안 깊숙한 곳의 벽장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밖에서 들려오는 난폭한 소리에 온몸을 떨었다. 가재도구가 부서지는 소리, 설촌이 아끼던 화폭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심장도 함께 찢어지는 듯했다. 마침내, 벽장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곳에는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민치혁이 서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소월을 발견하고는, 순간 숨을 멈췄다. 소문으로만 듣던,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완벽한 미인이었다. 아니, 그 어떤 상상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는 그녀가 그림에서 걸어 나온 존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설촌이 이런 절세미인을 숨겨두고 자신을 기만했다는 생각에 분노와 정복욕이 동시에 들끓었다. “과연… 소문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이런 보물을 숨겨두고 감히 나를 속여?” 그는 음탕한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소월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사내라고는 오직 설촌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사랑과 존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눈앞의 이 사내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굶주린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이리 온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것이다. 저 미천한 화공 놈의 품이 아니라, 이 나라 최고 권력가의 품에서 호사를 누리게 해주마.” 민치혁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소월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싫습니다! 놓으세요! 나는 선비님의 사람입니다!” “네년이 감히!” 저항에 부딪히자 민치혁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그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리고는 그녀의 저고리 고름을 난폭하게 잡아 뜯었다. 하얀 속살이 무력하게 드러나자, 그는 짐승처럼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그녀의 가녀린 몸 위로, 그의 더럽고 무거운 몸이 겹쳐졌다. 소월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그녀의 입에서는 설촌의 이름만이 터져 나왔다. “선비님… 선비님…!” 그녀의 저항이 거셀수록, 민치혁의 가학적인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는 그녀의 다리를 강제로 벌리고,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채우려 했다. 그녀의 몸을 더럽히고, 그녀의 영혼을 짓밟아, 완벽한 소유물로 만들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소월의 몸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점차 투명해지며, 마치 물감이 번지듯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속세의 더러운 욕망이, 그녀의 신성한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시키고 있었다. 당황한 민치혁이 주춤하는 사이,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 집에 돌아온 설촌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절규한다.

장에 도착한 설촌은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장이 까닭 없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결국 안료를 사는 것을 포기하고, 미친 듯이 집을 향해 달렸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불길한 예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부서진 대문과 난장판이 된 집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월의 이름을 부르며 집 안을 헤맸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소월이 작업실 한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저고리는 갈가리 찢겨 있었고, 뺨에는 시퍼런 손자국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녀의 몸 일부가, 마치 물감이 번지듯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소월…! 소월…! 정신 차리시오!” 설촌은 그녀를 부둥켜안고 절규했다. 소월은 희미하게 눈을 떠, 그를 보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선비님… 오셨군요….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뵐 수 있어서….” “아니오! 이런 말 하지 마시오! 내가… 내가 당신을 고쳐주겠소. 다시 그려주겠소!” 설촌은 미친 듯이 붓과 물감을 찾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한번 더럽혀진 영혼은, 한번 찢어진 화폭은,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소월의 몸은 점점 더 투명해져 갔다. “선비님… 저를… 저를 다시 그림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저 더러운 자의 손에 능욕당하느니… 차라리 선비님의 그림 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물감처럼 보였다. 설촌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녀를 부축해, 찢어진 화폭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붓을 들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먹물 삼아, 그녀의 모습을 다시 화폭 위에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창조가 아닌, 소멸의 과정이었다. 그녀의 사라져가는 육체를, 그는 영원의 화폭 속에 봉인하고 있었다. 그의 붓질이 한번 스쳐 지나갈 때마다, 소월의 몸은 한 겹씩 투명해지며 화폭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입맞춤을 나누었다. 살아있는 여인의 뜨거운 입술이, 차가운 그림의 입술로 변해가는 찰나였다. 마침내, 소월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화폭 위에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절세미인의 모습만이 남았다. 설촌은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업실에 있는 모든 그림과 종이에 불을 붙였다. “소월… 기다리시오… 이제 내가… 당신의 세상으로 가겠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는 그림 속 소월을 끌어안았다. 아무도 당신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아무도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화가의 집은 그의 사랑과 함께, 한 줌의 재로 변해갔다. 후세 사람들은 그저 천재 화가 하나가 실성하여 분신했다고만 기록했다. 그러나 그 불길 속에서, 그림과 하나가 된 연인의 기묘하고도 애절한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붓 끝에서 태어나 사랑을 위해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 여인, 소월. 그리고 그녀와의 영원한 합일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운 화가, 설촌. 여러분은 이들의 기묘하고도 슬픈 사랑을 어떻게 보셨나요? 구독과 좋아요는 더 애틋한 야담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음 이야기 예고:
다음 시간에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 밑바닥 천민의 신분으로, 오직 기술 하나로 조선의 노름판을 뒤흔든 한 남자의 통쾌한 인생 역전극! '조선판 타짜! 노름으로 인생 역전한 천민의 이야기' (출처: 청구야담)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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