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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의 씨앗 '만성 위염'이 싹 사라집니다! 매일 아침 연근을 '이렇게' 먹었더니 생기는 놀라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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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병원에서도 제발 평생 달고 살면서 관리만 잘하라고, 자칫하면 위암으로 넘어간다고 고개를 저었던 제 20년 묵은 만성 위염. 그 끔찍하고 지옥 같던 통증 속에서 죽어가는 저를 살려낸 건 비싼 명약이나 수술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동네 시장 바닥에서 흙 묻은 채 굴러다니는 ‘이것’ 한 뿌리를, 남들이 다 말리는 ‘이런 방식’으로 먹었더니 제 위장이 마치 아기 피부처럼 새살이 돋아났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도대체 무얼 드셨길래 위벽이 이리 튼튼해졌냐고 놀라워했던 그 기적 같은 변화. 제 목숨을 살린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 유산과도 같은 그 생생한 비법을 오늘 제 가슴을 열고 모두 공개하려 합니다. 저처럼 물 한 모금 넘기기 두려워 밤새 눈물짓는 분들이 계신다면, 제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 이야기에 딱 한 번만 귀를 기울여 주세요.

    ※ 1:

    제 나이가 올해로 예순다섯입니다. 남들은 이 나이가 되면 자식들 다 키워놓고 한숨 돌리면서, 주말이면 맛있는 맛집도 찾아다니고 남은 인생을 즐길 때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축복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하루 세 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끔찍한 형벌이자 피 말리는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남들 다 앓고 사는 흔한 신경성 소화불량이나 가벼운 위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밥을 조금만 급하게 먹거나 신경을 쓰면 명치끝이 딱딱하게 뭉치고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슴 한가운데로 시뻘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극심한 속쓰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네 약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위장약이며 겔포스며 소화제며 한 움큼씩 사다가 입에 털어 넣으면, 길어야 서너 시간 잠시 통증이 가라앉을 뿐이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아니 오히려 더 날카로운 송곳 수십 개가 제 위장 벽을 사정없이 득득 긁어대고 후벼 파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전국에서 위장병으로 유명하다는 대학병원과 전문 병원들을 미친 사람처럼 다 찾아다녔습니다. 굵은 내시경 호스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고통스러운 검사도 셀 수 없이 받았죠. 하지만 차가운 진료실에 앉아 검사 결과를 들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들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고 제게 돌아오는 말은 늘 똑같은 절망의 선고뿐이었습니다. 위벽이 종잇장처럼 너무 얇아져서 점막 아래 붉은 혈관들이 징그럽게 다 비쳐 보일 정도라고 했습니다. 만성 위축성 위염이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장상피화생까지 진행된 상태라며, 여기서 염증이 조금만 더 깊어지고 악화되면 위암의 씨앗이 발아하여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겁을 주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당장 이 얇아진 위벽을 두껍게 되돌리거나 완치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으니, 그저 평생 자극적인 음식 피하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위산 억제제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관리만 하며 살아야 한다는 그 선고는 제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제 삶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형체조차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매콤한 김치찌개 한 숟가락, 바삭하게 구운 생선구이 한 조각도 저는 마음 편히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고춧가루가 아주 조금, 티스푼으로 하나만 들어간 음식을 실수로 집어 먹은 날이면, 그날 밤은 위장이 불타오르듯 뒤틀려 차가운 방바닥을 뒹굴며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정성껏 맛있는 밥상을 차려놓고도, 정작 저는 그 옆에 초라하게 앉아 맹물에 끓인 허연 흰 죽만 훌훌 불어 넘겨야 했죠. 그 묽은 죽마저도 소화가 안 돼서 명치에 돌덩이가 얹힌 듯 꺽꺽거리기 일쑤였습니다. 먹는 즐거움, 씹고 맛보는 기쁨이 완전히 거세된 인생이 얼마나 지독하게 우울하고 비참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지옥의 깊이를 모릅니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어 10킬로그램 넘게 살이 내렸고, 손목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제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시커멓고 잿빛으로 변해버려 꼭 시체 같았죠. 밤마다 위산이 역류해 타들어 가는 가슴을 움켜쥐고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헛구역질을 해대면서, 차라리 이 끔찍한 고통을 끝내게 이대로 조용히 숨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몹쓸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위암이라는 시한폭탄을 뱃속에 품고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기분, 그것은 살아 숨 쉬고 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완벽한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 2:

    그렇게 하루하루 생명력이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던 어느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어서 며칠째 어두운 방안에만 웅크리고 누워있는 제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억지로 제 손을 이끌고 집 근처 전통시장 구경이라도 가자며 나섰습니다. 시장 특유의 활기찬 풍경도, 상인들의 왁자지껄한 호객 소리도,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먹음직스러운 길거리 음식 냄새도 제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저승의 풍경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음식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올라와 코를 막고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도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상점과 인파를 지나치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 익숙하고도 강렬한, 오래된 흙냄새가 훅 하고 제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냄새는 그냥 흙먼지 냄새가 아니었어요. 달큰하면서도 어딘가 비릿하고, 축축하게 젖어 있으면서도 엄마의 품처럼 묘하게 포근한... 제 가슴 아주 깊은 곳,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의 봉인을 강렬하게 끄집어내는 냄새였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린 사람처럼 홀린 듯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았습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펼쳐진 허름한 채소 가게 한쪽 구석에, 시커먼 진흙이 잔뜩 묻어있는 굵직하고 못생긴 연근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씻어놓은 뽀얀 연근도 아니고, 방금 진흙탕에서 캐낸 듯 흙범벅이 된 그 흉측한 연근을 보는 순간, 제 눈앞에 30년 전 세상을 떠나신 친정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손이 환상처럼, 아니 너무도 생생하게 아른거렸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 체기가 심하게 있거나 배가 아파서 방구석을 데굴데굴 구르며 식은땀을 흘릴 때면, 우리 어머니는 병원이나 약국으로 달려가는 대신 늘 장터로 달려가 저 진흙 묻은 굵은 연근을 한가득 사 오시곤 했습니다. 어두운 부엌 찬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투박한 부엌칼로 연근의 겉껍질을 쓱쓱 벗겨내고, 녹슨 강판에 손이 베일세라 조심조심 벅벅 갈아서는, 까슬까슬한 베보자기에 넣고 온 힘을 다해 꾹 짜내셨죠. 그리고는 그 미지근하고 떨떠름한, 묘한 흙내음이 나는 생즙을 끙끙 앓는 제 입에 억지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끈적거리고 맛없는 즙이 어찌나 역겹고 먹기 싫었던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불며 도망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도망가는 저를 붙잡아 안고 등허리를 따뜻한 손으로 쓸어내리시며 "명자야, 이거 꾹 참고 먹어라. 이게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어난 제일 귀한 보약이다. 속병 나고 위장 아픈 데는 이 세상에 이만한 명약이 없어. 어서 꿀꺽 삼키고 속 가라앉혀라" 하시며 저를 달래고 또 달래셨습니다.

    시끄러운 시장통 한복판에서, 그 옛날 어머니의 다정하고도 간절했던 음성이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자, 저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 짐승처럼 엉엉 소리 내어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미친 여자 보듯 쳐다보았지만 부끄러운 줄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가, 위장병으로 고통 속에 말라 죽어가는 불쌍한 딸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 이 못생긴 연근을 제 눈앞에 가져다 놓으신 게 아닐까 하는 강렬하고도 운명적인 확신이 가슴을 강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떨리는 두 손으로,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덩이라도 만지듯 진흙이 잔뜩 묻은 굵직한 연근 여러 뿌리를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가슴에 꽉 품어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품에 안긴 그 무겁고 축축한 연근 봉지가, 저에게는 세상 어떤 비싼 병원의 명약보다 더 귀하고 절실한, 살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의 동아줄처럼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 3:

    집에 오자마자 외투를 벗을 새도 없이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싱크대에 물을 틀고, 연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시커먼 진흙을 찬물에 뽀득뽀득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두꺼운 흙을 씻어내고 감자칼로 거친 껍질을 스윽 벗겨내니, 그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자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뽀얗고 눈부시게 하얀 고운 속살이 제 자태를 드러내더군요. 숨을 죽이고 도마 위에 연근을 올려놓은 뒤, 식칼을 들어 썩둑 하고 반으로 자르는 그 찰나의 순간, 저는 두 눈을 의심할 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잘라진 연근의 단면 사이로 마치 촘촘하게 엮인 거미줄처럼, 혹은 쫀득한 치즈가 늘어나듯 하얗고 투명한 진액들이 끈적하게 쭈욱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건강 정보 프로그램과 책들을 샅샅이 뒤져보고 나서야 그것이 위 점막을 보호해 주는 '뮤신'이라는 귀하디귀한 당단백질 성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절박했던 순간에는 그런 복잡한 의학적인 지식 따위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제 눈앞에서 길게 늘어나는 그 끈적거리고 부드러운 하얀 실타래 같은 진액을 보는 순간, 만신창이가 되어 피가 맺히고 헐어있을 제 얇디얇은 위장 벽을 저 신비로운 진액이 마치 부드러운 반창고처럼, 혹은 코팅제처럼 빈틈없이 감싸주고 보호해 줄 것만 같은 강렬한 본능적인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위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물 한 모금 넘기기도 버거운 상태라, 함부로 아무 음식이나 덜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근을 갈아서 생즙으로 먹어보겠다고 말하니, 하나같이 기겁을 하며 펄쩍 뛰며 말렸습니다. 위염 환자가 찌거나 삶지도 않고 소화도 안 되는 생채소를 아침 빈속에 생으로 갈아 먹었다가는, 위산이 폭발하고 위경련이 일어나서 당장 응급실에 실려 갈 거라며 다들 혀를 끌어 차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죠.

    하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잃을 것도 없었습니다. 최고의 대학병원 의사조차도 평생 못 고친다고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한 제 썩어 문드러진 위장이었어요. 남들의 걱정 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만의 확고한 믿음, 아니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제게 몸소 보여주셨던 지혜에 제 아픈 경험을 더해 연근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약으로 먹는 완벽한 비법을 연구하고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깨달은 첫 번째 핵심 비법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불에 익히지 않은 순수한 '생(生)'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근을 끓이거나 열을 가해 조리하는 순간, 그 위벽을 튼튼하게 보호해 주고 염증을 치료해 주는 핵심 성분인 끈적한 '뮤신'과 비타민 C가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비결은 밤새 위장이 텅 비어 있는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빈속'에 이 생즙을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독한 위산이나 다른 음식물이 들어가 위벽을 자극하기 전에, 연근의 점액질로 위벽 전체에 철벽같은 보호막을 씌워주는 코팅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성분이라도 차가운 냉기가 도는 생즙이 극도로 예민해진 위를 자극하고 수축시킬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판에 곱게, 아주 곱게 간 생연근 즙에 한 번 팔팔 끓였다가 미지근하게 체온 정도로 식힌 '따뜻한 물'을 반반 비율로 섞어 온도를 부드럽게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생연근 특유의 떫고 아린 맛을 잡아주면서, 동시에 위장 점막의 상처와 염증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천연 벌꿀을 딱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섞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미지근하고 끈적거리며 달콤한 향이 나는 저만의 황금 비율 생명수.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식탁에 앉아, 달달 떨리는 두 손으로 그 미지근하고 끈적한 연근즙 첫 모금을 목구멍으로 조심스레 넘기던 그 숭고한 순간을 저는 죽는 날까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식도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내려간 그 끈적한 한 모금이, 늘 시뻘건 불덩이처럼 타오르며 칼로 찌르는 듯 아팠던 제 명치끝을 마치 어머니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약손으로 가만히 어루만져 주듯, 거짓말처럼 서서히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고 있었습니다. 명치를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저를 20년이라는 끝없는 위장병의 지옥에서 건져 올려, 다시 사람답게 밥을 먹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 생명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 4:

    그 첫날 새벽, 미지근하고 끈적한 연근즙 한 잔이 제 명치끝을 어루만져 주었던 그 경이로운 첫 경험 이후로, 저의 매일 아침은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밤새 텅 빈 위장 속에서 독한 위산이 들끓어 올라 속이 쓰리고, 입안에는 쓴물이 고여 있어 하루를 원망과 한숨으로 시작했었죠. 하지만 연근즙을 마시기 시작한 날부터 저는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누가 깨우지 않아도 번쩍 눈을 뜨고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차가운 겨울 아침, 보일러도 채 돌지 않은 냉골 같은 부엌 바닥에 맨발로 서 있어도 전혀 춥지가 않았습니다. 오직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가 제 온몸을 난로처럼 뜨겁게 덥혀주고 있었으니까요. 냉장고에서 흙이 잔뜩 묻은 연근 한 토막을 꺼내어 흐르는 찬물에 뽀득뽀득 씻어내고, 껍질을 벗겨 강판에 쓱쓱 갈아내는 그 사각거리는 소리는, 저에게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보다 더 벅찬 생명의 교향곡이었습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결려도, 강판 위에서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그 끈적한 진액들을 볼 때면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내 위장에 난 불을 꺼줄 소방수요, 헐어버린 상처를 꿰매줄 명약이라고 생각하니 그 즙을 짜내는 한 방울 한 방울이 그렇게 애틋하고 귀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근을 갈아 따뜻한 물과 꿀을 섞어 마신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저는 제 몸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던 시큼하고 역겨운 위산 역류가 씻은 듯이 사라졌고, 명치에 단단하게 뭉쳐있던 주먹만 한 돌덩이 같은 불쾌감이 부드럽게 풀려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소름 끼치는 송곳 같은 통증이 둔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연근 속에 들어있는 그 끈적끈적한 '뮤신'이라는 성분이 제 얇고 헐어버린 위벽을 밤새도록 도포하여 철벽같은 보호막을 쳐주고, 연근이 머금고 있던 '탄닌'이라는 성분이 위장 점막 곳곳에 피가 맺혀있던 염증과 상처들을 깨끗하게 지혈하고 아물게 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저는 정말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허연 흰 죽을 끓이지 않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하얀 쌀밥을 푹 떠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 넘겼습니다. 밥알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툭 떨어지는 그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 언제 통증이 밀려올까 온몸을 잔뜩 긴장시켰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장은 평온했고, 오히려 뱃속이 따뜻해지며 편안한 포만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통증 없이 온전한 밥 한 숟가락을 삼킨 그날 아침, 저는 빈 밥그릇을 끌어안고 식탁에 엎드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살았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그 벅찬 감격은 제 영혼까지 치유해 주고 있었습니다.

    ※ 5:

    그렇게 매일 아침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근즙을 생명수처럼 마신 지 딱 6개월이 되던 달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예약해 두었던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날이었죠. 예전 같았으면 또 위벽이 얼마나 헐었을까, 혹시나 염증이 위암으로 번지지는 않았을까 두려움에 떨며 병원 문을 나섰겠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잿빛이었던 제 얼굴에는 어느새 복숭앗빛 혈색이 돌고 있었고, 앙상했던 몸에도 제법 살이 붙어 걸음걸이마저 가벼웠습니다. 수면 마취제를 맞고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저를 맞이하던 담당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제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악과 환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제 위내시경 사진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고 계셨습니다.

    "아니... 어머님, 도대체 지난 6개월 동안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신 겁니까? 혹시 제가 모르는 엄청난 명약이라도 드신 거예요?"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에 저는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화면 좌측에는 6개월 전,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핏줄이 징그럽게 다 터져 있고 시뻘건 염증으로 뒤덮여 당장이라도 구멍이 날 것 같았던 제 끔찍한 위장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면 우측에는 오늘 방금 찍은, 갓난아기의 속살처럼 뽀얗고 두툼하며 건강한 선홍빛을 띠고 있는 윤기 나는 위장 사진이 나란히 띄워져 있었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장상피화생으로 얇아졌던 위 점막 세포들이 전부 다 재생되었어요! 염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위벽이 정상인보다 더 두껍고 튼튼해졌습니다. 현대 의학의 약으로는 염증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죽어버린 위벽을 완벽하게 재생시킬 수는 없는데... 도대체 무얼 드신 겁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장터 바닥에 뒹굴던 흙투성이 연근과, 어릴 적 강판에 연근을 갈아주시던 우리 어머니의 투박한 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시장에서 파는 흙 묻은 연근을 매일 아침 따뜻한 물과 꿀에 섞어서 빈속에 갈아 마셨습니다. 그게 다예요. 우리 어머니가 남겨주신 흙 묻은 보약이 제 죽어가는 위장을 살려냈어요..." 제 대답에 의사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고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음식이 약을 이겼네요. 어머니의 지혜가, 자연의 힘이 현대 의학이 포기한 생명을 살려낸 겁니다. 어머님, 이제 더 이상 위암 걱정은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완치입니다." 완치. 평생 관리만 하며 살아야 한다던 그 끔찍한 족쇄가 풀려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병원 복도로 걸어 나온 저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엄마... 고마워. 엄마가 날 살렸어." 소리 없는 오열이 병원 복도를 가득 채웠습니다.

    ※ 6:

    병원을 다녀온 그날 저녁, 우리 집 식탁에는 정말 20년 만에 기적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언제나 제 자리 앞에는 멀겋고 허연 죽 한 그릇과 자극 없는 나물 반찬 조금이 놓여 있었고, 가족들은 저의 눈치를 보며 소리 없이 밥을 먹곤 했죠. 하지만 그날 제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과, 붉은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간 얼큰한 된장찌개, 그리고 매콤하게 버무린 배추겉절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남편과 퇴근하고 온 아들딸이 숨을 죽인 채 저의 숟가락질만 노심초사 바라보고 있었죠. 저는 환하게 웃으며 얼큰한 찌개 국물을 듬뿍 떠서 밥에 쓱쓱 비빈 다음, 커다란 겉절이 한 조각을 올려 입이 터져라 밀어 넣었습니다. 매콤하고 짭짤하며 고소한 그 완벽한 감칠맛이 미각을 일깨우는 순간, 잃어버렸던 20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아찔한 희열이 몰려왔습니다. 속쓰림? 통증?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이 주는 벅찬 행복감만이 온몸을 감쌌죠. 제가 꿀맛처럼 밥을 씹어 삼키는 모습을 보며, 묵묵히 밥을 먹던 남편이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상을 짚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 큰 아들딸도 남편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죠. "여보,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 살아서 이렇게 다시 같이 매운 찌개를 먹어줘서 너무 고마워..." 그 눈물 젖은 저녁 식사는, 위장병이라는 괴물에게 짓눌려 잃어버렸던 우리 가족의 웃음과 행복을 되찾은 진정한 축제였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우울하고 병약한 노인이 아닙니다. 동네 장터에 가면 채소 가게 상인들과 넉살 좋게 농담을 주고받는 아주 활기찬 단골손님이 되었죠. 상인들도 이제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장 진흙이 두껍게 묻어있고 팔뚝만큼 굵고 묵직한 수연근들만 골라서 비닐봉지가 찢어지도록 담아주십니다. 하얗게 표백되어 예쁘게 포장된 마트의 깐 연근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 더럽고 끈적한 진흙 속에, 제 위장을 살리고 썩어가는 염증을 치료할 진정한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으니까요. 연근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순결한 연꽃을 피워냅니다. 제 삶도 그랬습니다. 20년이라는 끝없는 위장병의 진흙탕 속에서 허덕이며 절망했지만, 결국 이 연근이라는 자연의 선물 덕분에 다시 건강이라는 아름답고 맑은 꽃을 활짝 피워낼 수 있었으니까요. 매일 아침 냉장고를 열어 흙 묻은 연근을 꺼내는 순간은 저에게 단순한 요리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살려준 대자연에 대한 경건한 기도이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연근은 제게 음식이 아니라 종교가 되었고, 은인이 되었습니다.

    ※ 7: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방송을 들으며 남몰래 쓰린 배를 움켜쥐고 밤잠을 설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독한 약 한 움큼을 삼키면서도 낫지 않는 통증에 절망하고, 음식을 씹고 넘기는 당연한 기쁨을 빼앗긴 채 시들어가는 분들, 제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끔찍한 지옥의 한가운데서 20년을 살아봤기에 여러분의 그 찢어지는 고통과 피 말리는 우울함을 누구보다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비싼 돈 주고 몸에 좋다는 보약 달여 드실 필요 없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 일찍 동네 시장으로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흙이 잔뜩 묻어있는 가장 못생기고 굵은 연근을 한가득 사 오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얇아진 위벽을 시멘트처럼 발라주고 새살을 돋게 해 줄 기적의 묘약입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절대 불에 익히거나 끓이지 마십시오.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그 생연근의 껍질만 살짝 벗겨서 강판에 곱게 가십시오. 그리고 믹서기보다는 귀찮더라도 손으로 직접 강판에 가는 것이 그 끈적한 뮤신 점액질을 훨씬 더 풍부하게 살려낼 수 있습니다. 위가 많이 약해지신 분들은 찬 생즙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반드시 저처럼 물을 팔팔 끓인 뒤 체온 정도로 미지근하게 식힌 따뜻한 물을 즙과 반반씩 섞어 온도를 맞추십시오. 거기에 질 좋은 천연 벌꿀을 한 숟가락 듬뿍 타서, 끈적하고 달콤한 그 기적의 물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빈속에, 가장 먼저 여러분의 위장으로 내려보내십시오.

    처음 며칠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연의 치유력은 느리지만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속을 뒤집어놓던 위산 역류가 멈추고 칼로 찌르던 통증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놀라운 마법을 온몸으로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얇아진 위벽이 다시 튼튼하게 차오르고, 염증이 사라져 결국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건강한 위장을 되찾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제게 알려주신 이 작지만 위대한 지혜가, 저를 살렸듯이 이제 여러분의 고통스러운 삶도 기적처럼 구원해 주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흙 묻은 연근 한 뿌리의 기적, 이제는 여러분이 직접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되실 차례입니다. 제발 포기하지 마시고, 내일 아침 꼭 시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건강한 두 번째 인생을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엔딩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제 위장병을 고쳐준 이 눈물겨운 연근의 기적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주변에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밥 한술 제대로 못 뜨고 고통받는 가족이나 지인이 계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이 영상을 꼭 공유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밥상 위로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식약동원', 다음 시간에도 병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대자연의 위대한 생명력과 치유의 비법을 가득 안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아프지 마시고, 뱃속 편안하고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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